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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부산일보] 2002.10.01. 부산에 살고 싶다- 수영만, 자연과 인공의 콜라주

작성일
2002-10-01
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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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는 이미지의 집합

도시라는 유기체 속에서 생성되는 수많은 사건들은 물리적인 공간과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이미지를 생성하고 소멸시킨다. 그 이미지들이 몽타주되어 도시를 드러낸다. 도시의 이미지는 시간과 관계를 맺으며 역사성으로 재현되기도 한다. 혹은 자연적인 환경들과 관계를 맺으며 특정한 지역의 공간성을 표현해 주기도 한다. 500년 시간의 흔적을 지닌 서울을 역사도시라 부른다. 이에 빗대 부산은 축척된 시간의 일천함으로 인해 얇디얇은 두께의 가벼운 도시로 비하되기도 한다.

그런데 지구의 역사를 24시간으로 나누면 인류의 역사는 그 24시간의 마지막 몇 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근대도시의 기원 역시 인류의 역사에 있어 마지막 몇 분에 지나지 않는다. 도시를 가리켜 인간의 삶이 공간 속에 녹아있는 시간의 박물관이라고 표현하지만 결국 그 시간이 만들어 내는 도시의 역사성은 지금 현재 일어나는 일상의 집적,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가 거주하는 부산은 역사성에 갇힌 화석화된 도시가 아니라 자연과의 거친 호흡으로 공명하며 움직이는 도시이다. 평면성을 벗어난 자연지형의 형상으로 인해 부산은 보다 입체적인 공간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고,이를 배경으로 만들어지는 다양한 장면들이 부산이 가진 도시의 이미지이다. 산동네 경사지를 배경으로 조각난 파편들이 만들어 내는 휴먼 스케일의 자글자글한 도시와 해운대,수영만,광안리 등 도시계획에 의해 구성된 거대 스케일의 굵직굵직한 도시가 입체적으로 대비되는 모습들이 부산이 가진 이미지이다.

특히 이런 도시적 이미지가 가장 활발하게 생성되고 눈앞에 드러나는 곳이 수영만이다. 수영만은 배산,금련산,장산 등을 사이에 두고 흘러 내려온 수영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이니 자연적인 요소가 동적으로 엉켜 있는 형상이다. 자연이 만들어 내는 선과 면들로 이루어진 수영만 위에 인공물들이 만들어 내는 기하학적인 덩어리들이 가미되어 자연과 인공의 호흡이 들숨과 날숨으로 엮이는 가장 부산다운 경관이 이곳에서 연출된다.

# 바다 위에 콜라주된 스카이라인

그럼 좀더 구체적인 공간 속에 들어가 이러한 장면들을 만나보자. 해운대,광안리를 잇는 수변 영역에 벡스코,부산시립미술관,시네마테크,영화촬영 스튜디오 등 다양한 문화시설들과 올림픽공원,시네파크,민락수변공원 등 오픈스페이스가 형성되어 문화적인 벨트를 이룬다.

수영야류와 동래야류의 발원지가 사천(絲川)이라고도 불리웠던 수영강을 따라 형성되었던 사실을 보면,수영만의 문화경관은 어쩌면 예전부터 있어왔던 문화적 축의 현재적 재현일지도 모른다. 강을 따라 형성된 문화의 축이 바다를 만나 새로운 워터프론터 형의 띠를 형성한 것이다.

높이 108m,길이 243m의 거대한 구조물인 벡스코는 건축 전체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글라스홀과 축구장 세 개 정도의 거대한 무주(無柱)공간으로 형성된 전시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직과 수평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건축물의 입면은 삐딱한 경사 엇각으로 구성되어 어느 방향에서도 다른 모습의 다양한 형태가 연출된다. 유리로 된 투명성,사선과 유선형이 조합된 추상성,거대 스케일을 이루기 위해 구사된 하이테크적인 디테일 등의 어휘가 이 건축을 말해주고 있다.

시립미술관은 폐쇄적인 벽면으로 구성된 네 개의 기하학적 덩어리가 병치된 모습이다. 수평과 수직의 교차,지붕 형태에서 드러나는 사선마저도 엄정한 기하학적 규칙에 의존되어 있어 길 건너 벡스코와는 대비된 표정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필름을 형상화한 외형의 시네마테크,고딕건축이 현대적 언어로 묘하게 번안된 수영로교회,기능과 형태가 적당히 절충된 요트경기장 등등. 기념물적인 건축물들 사이사이에는 시네파크,올림픽 공원 등 오픈스페이스가 형성되어 비움과 채움의 공간이 엮여져 있다. 여기에다 새롭게 현수교로 건설된 광안대교는 도시의 조직을 좀 더 역동적으로 묶어 준다.

그런데 광안대교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조망에 익숙한 우리에게 땅을 배경으로 하는 바다 너머 도시의 새로운 경관을 보여준다. 그와 동시에 도시의 구조물들이 만들어 내는 거대한 경관 속에서 왜소해진 인간에 대한 시점도 보여준다. 도시에 어떤 구조물이 놓여진다는 사실은 도시의 인프라를 새롭게 구축할 뿐만 아니라 이미 일상적으로 놓여진 사실마저도 새롭게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 손에 잡히지 않는 '꿈의 도시'

광안대교에서 바라본 문화벨트의 건축은 직설적으로,혹은 은유적으로 저마다의 존재성을 상징하고 있다. 각각이 콜라주된 스카이라인은 매끈한 그림을 형성하지만,마치 사람 없이 그려진 조감도처럼 공허함도 던져 준다. 어쩌면 그 공간 속의 인간은 그저 구경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회로망처럼 촘촘히 짜여진 도시 조직망,인간의 지각 범위를 벗어난 거대 스케일의 공간들 속에서 어쩌면 현대인은 영원히 도시와 유리된 타자인지도 모른다.

구경꾼으로 밀려난 이에게 도시는 시각적 체험을 제공하는 장소일 뿐,손에 잡히지 않는 '꿈의 도시' 이다. 광안대교와 문화벨트의 공간들을 배회하다 마주친 작품. 시립미술관에 전시된 '2002 부산비엔날레' 참가작 중 하나인 '드림시티(dream city)'는 관람자가 도시를 안과 밖에서 동시에 보는 비일상적인 체험을 하도록 하여 도시의 스케일과 바라보는 시점의 비밀을 들춰낸다. 팽창과 증식을 거듭하며 스펙타클하게 전개된 도시의 모습은 마치 새가 되어야 전체를 바라볼 수 있듯이,인간의 시점과 지각 범위를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얘기하고 있다.

부산을 대표하는 드라마틱한 자연 환경 속에 들어선 거대한 스케일의 구조물들,조연배우는 없이 주연급 주인공들만이 가득한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이 수영만에는 세련됨만이 있을 뿐,맛깔스러움은 빠져 있다. 수영만,광안리,해운대,벡스코,부산시립미술관,광안대교…. 자연과 건축물만이 횅하니 그려진 조감도 위에 거친 인간의 호흡이 공명하는 또 다른 꿈의 도시를 상상해 본다.   -김명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