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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건축사신문]2011.11.16 건축, 인문학과 소통하다 ⑥건축과 시장

작성일
2011-11-16
작성자
최고관리자

건축, 무한도전의 시장

김명건 건축사 | (주)다움건축 종합건축사사무소

자본주의 시대, 예술로서의 건축

건축을 진실로 가치 있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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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의 작품일까요 익명성에 묻힌 판박이 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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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건축시장 논리로는 만들어서도 만들어질수도 없다
 


에피소드 1

대중매체에 그려지는 건축가는 대개 화려하기 마련이다.

적당한 부와 미적 센스, 지적 여유, 약간의 바람기로 치장되어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설정하기엔 안성맞춤이다. 게다가 간혹 건설현장을 통해 비춰지는 일하는 남자의 카리스마는 더더욱 매력을 증폭시킨다.

잊을 만하면 TV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나타나서, 추락하는 대학 건축과의 입시경쟁률을 올려주는 효자노릇도 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그러한가? 실상이 그러한가?

헐리웃 영화 <은밀한 유혹 (Indecent Proposal, 1993년 작)>은 건축가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건축가가 사는 집안 곳곳에 붙어 있는 엘로우 트레이싱지엔 미래의 꿈이 담긴 아름다운 주택의 스케치가 가득하고, 실무를 하면서 그는 대학에서 건축을 강의한다. 영화 장면들 중에는 꼬르뷔제의 롱샹교회당, 루이스 칸의 벽돌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한다. 주인공 건축가에게 꿈, 사랑, 미래, 가치, 못 가진 게 무엇인가?

사랑하는 아내와 건축설계라는 사랑하는 일을 하며 사는 주인공, 젊은 건축가는 종전의 매체에서 다뤄졌던 화려한 건축가와 다름없었다.

그러던 중 엄청난 불경기가 닥치고, 그는 물론이고, 그의 동료들은 건축설계회사에서 정리해고되고, 살던 집마저도 부채 탓에 은행에 빼앗기고 만다. 코너에 몰린 그가 택한 곳은 일확천금의 배팅! 라스베이가스. 라스베이가스는 그에게 쥐꼬리만큼 남아있던 돈과 무엇보다 가장 사랑했던 아내마저 잃게 만든다. 모든 것을 가졌던 그가 불경기란 한파 앞에 모든 것을 잃고 만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실무의 문턱에서 건축을 시작하던 나에게 영화 <은밀한 유혹>은 건축이 가진 화려함과 암울함을 동시에 예고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후 지금까지 건축과 함께 한 여정은 더 암울함과 덜 암울함이 반복하는 롤러코스터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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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의장면1 쉴새없이 분주한 대형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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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의장면2 주인공건축가의 집안곳곳에 붙혀진꿈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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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의장면3 주인공건축가의 손길이 스며있는 작품 프랭크게리와 아이젠만이 느껴진다

 

에피소드2.

십년 정도 설계회사 운영해보니 만나는 건축주는 크게 2종류의 사람들도 나누어진다.

그룹 1: “ 참 좋겠어요. 예술적인 면, 기술적인 면 모두 다루는 일을 하니 얼마나 멋있어요?
시간은 상관없으니 좋은 작품 만들 때 까지 열심히 작업해 주세요.~~”

그룹 2: “ 건축 뭐 별거 있나요? 며칠 내에 일 마무리 할 수 있나요? 법적 검토하시고, 분양 찌라시 몇 가지 가져 왔으니, 참고하세요.
빨리 하시면 소장님도 좋잖아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룹1의 프로젝트는 마음은 훈훈하지만, 밑도 끝도 없는 시간과의 소모전이고 그 사이 주머니는 비게 마련이다. 반면에 그룹2의 프로젝트는 뭔가 마음은 찝찝한데 속전속결이고 주머니 사정은 나아진다. 스스로 그룹2 덕분에 그룹1의 일을 한다고 자조한다.

이처럼 에피소드 1, 2는 자본주의시장과의 접점에서 건축이 부딪히는 나약하고 애매하기 그지없는 지점을 이야기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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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움건축창고-수많은아이디어가 시장으로 나서지도 못한채 사장되어있다-건축아이디어납골당

 

건축, 예술이면 예술답게?

은퇴한 한 사업가가 강남에서 아파트 팔은 돈으로, 강북에 땅 사서 그 위에 유명 건축가의 손을 빌려 작품다운 주택을 지어서 살다가 나중에 다시 팔았더니 예전에 팔은 아파트의 전세 값도 못 받았다는 얘기가 있다.

이처럼 건축가 입장에서 실무에서 접하는 자본시장과의 괴리는 접어두고라도, 건축가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건축물의 경우도 자본의 가치적인 측면에서 보면 민망해진다.

작품처럼 예술의 세례를 받게 되면, 사물이든 인간이든 그 가치가 올라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 진리인데, 묘하게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건축의 사적 가치는 별반 차이가 없다. 오히려 떨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물론 공적 가치는 올라갈 수 있지만. 이미 부동산의 가치가 건축의 가치를 정해 버리니 어쩔 수 없는 형편이다.

예술 작품은 비평가든 대중이든 선호도에 대한 평가를 거쳐 가격이 책정된다. 이로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으로 유통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건축은 그런 매커니즘이 없다. 건축주든 대중이든 좋은 건축을 가려 가격 차이를 줄 수 있는 시스템이 없으니, 건축물을 되팔 때에도 건축디자인의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지 못한다.

어쩌면 예술작품을 가격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예술을 파괴시키는 것이고, 예술 작품의 특질은 상호 교환 가능성이 아니라, 유일한 절대적인 것이 생산될 가능성에 있다는 안또니오 네그리의 말처럼 건축이 지고지순한 예술의 덫에 오히려 갇혀 버린 형국이다.

건축과 의학이 지나온 길을 돌이켜 보자.

근대가 시작되기 전, 의학은 연금술 등과 결합된 다분히 주술적인 행위였다.

사람의 몸에 과학 혹은 기술이라는 도구가 결합되는 것 자체가 반종교적인 행위였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의학과 과학이 만나며, 의학은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힘든 전문적 영역으로 진입하게 된다.

더욱이 현대에 들어서는 IT, BT등 첨단 분야들 역시 속속 의학 분야에 녹아들며 점점 더 전문성이 보강되어 간다. 당연히 의학이라는 큰 프레임 안에 세부 전문 분야들이 통제를 받는 것이다.

단선적으로 보면 건축의 경우, 아이러니하게 정반대의 길을 가게 된다.

근대 이전의 건축은 당시로선 첨단 과학의 정수였다. 피라미드, 파르테논, 사그라다파밀리아 등의 건축을 위해서 물리, 천문, 등 다양한 분야의 과학적인 협업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선 오히려 이런 기술이나 과학 분야보다는 상대적으로 가치 우위에 있는 예술분야와 손을 잡게 된다. 거칠게 말하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고, 주관적이고 애매모호한 예술을 건축의 내재가치에서 우위에 둠으로서 건축은 누구도 쉽게 다룰 수 없는 전문성을 견지할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전문성(사회, 혹은 시장체계가 보편적으로 일의 성과, 가치에 비례해서 대가의 기준을 마련하고 인정하는 정도를 전문성 확보 정도로 보자.)을 담보하지 못한 건축은 제자리를 잡지 못해 버렸다.

여태껏 사람의 삶이 윤택해지면 이와 비례해서, 인간이 추구하는 공간도 늘어나게 마련이었다. 특히 소비사회는 끊임없이 소비를 위한 건축을 만들어 내고, 이런 사이클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건축가들에 많은 기회를 줬었다. 수많은 쇼핑몰, 극장, 호텔, 주거 시설. 심지어 세컨드하우스까지.

그런데, 요즘 들어 라이프사이클의 변화는 전통적인 개념의 공간 확장에서 이탈한 조짐이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등 IT의 발달 등의 하드웨어 매체 변화는 굳이 새로운 공간 확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도서관에 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책(e-book)을 접할 수 있다. 교육 역시 충분히 학교를 가지 않더라도 가능한 세상이다. 굳이 백화점이나 쇼핑센터에 가지 않더라도 스마트폰만 가지면 쇼핑이 가능하다. 굳이 TV를 보러 집에 간다든지,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갈 필요가 없는 환경이 만들어 지고 있다.

비약해서 말하자면 건축에 유비쿼터스 체계를 담아야 할 상황에서 유비쿼터스가 건축을 필요치 않는 상황으로 전개될 수도 있는 것이다. 건축이 필요 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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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평도 안되는 집이지만 매번 바뀌는 생각을 따라 집이 다시 만들어진다

 

우리 자신의 성공은 어디에?

여태껏 자본을 대는 클라이언트의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건축가들은 “성공”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붙들어 맨 채 살아 왔다. 그러면서도 건축가는 공공재산와 사유재산, 예술과 기술, 개발과 보존, 도시와 반도시, 문화로서의 건축과 산업으로서의 건축 등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하나이면서 둘, 지향점이 같으면서도 대립적인 가치를 함께 만들어 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고 끊임없이 고뇌한다.

그러나 정작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는 밤낮없이 일하면서도 자기 혹은 자기의 설계 조직의 성공을 위해서는 성공적인 전략은 물론이고, 조직을 위한 마스터플랜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몇 년 전 한 외국계 소프트웨어(ACAD)사장이 중소 설계업체 사장들을 대상으로 지난해 설계회사에 수익이 낫는지 손해가 낫는지 설문조사를 했는데, 80%가 대답을 못했다고 한다. 나 역시 대충 거칠게 인건비에다 외주비, 회사 운영비 정도를 적당히 나누는 것을 원가라고 생각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러다보니, 건축과 관련한 온갖 굳은 일은 도맡은 느낌이다. 물론 무상 혹은 서비스로.

우리가 이처럼 도면 위에서 순수하게(?) 소위 작품들과 씨름하고 있는 사이에 금융가가 전체적인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부동산업자가 입지를 정하고, 광고 혹은 MD(상품기획자)가 실내공간을 지배하고, IT컨설턴트는 건축과 도시를 네트워킹하고 관계를 결정하는 일들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

시장이 어떻게 변화하는가, 우리의 일거리는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가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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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가 정기용의 무주공공프로젝트-공공을 위한 길은 멀고 험하다

 

 

이쯤에서 우리가 믿고 있는 당연한 진실에 대해, 의문점을 가져본다.

건축가는 장인정신으로 무장해야만 진정한 전문가인가?

예술로서의 건축이라는 명제가 우리 직능을 진실로 가치 있게 하는가?

도시의 집중화 혹은 개발 등은 우리 직능에서 막아서야 할 가치인가?

건축을 상품으로 보는 것은 자본주의의 천박함에 사로 잡혀서 인가?

전통적 개념의 물리적 공간만 건축인가?


함께 읽으면 좋을 책1
· 「설계사무소 전략계획」레이몬드 F.코간 등 공저. 기문당
· 「도시의 승리」 에드워드 글레이저. 해냄
· 「현대 건축의 흐름」 유현준, 미세움
· 「예술과 다중」 안또니오 네그리,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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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건 약력 : 김명건 건축사는 1968년 부산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수학하고, 1999년 다움건축을 설립하여 건축설계를 해왔다. 건축을 중심으로 문화판 등과 다양한 분야와 소통을 해왔고, 최근엔 중국 우한의 한중국제교육학원 준공, 인도네시아 친환경연구센터 등 해외프로젝트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서울병원, 진해연세병원, 아르제니스 전시관, 동서대 민석기념도서관,달맞이치과, 센텀큐비, 동서대종합운동장 등이 있으며, 부산대학교 대학원 기숙사 설계경기, 연제구 거제종합사회복지관 설계경기에 당선된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