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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부산일보] 2006.12.23. 지하철 따라 부산공간 읽기 -시리즈를 마치며

작성일
2006-12-23
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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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 '지하철 따라 부산공간읽기' 결산 좌담회가 지난 20일 부산일보 10층 고메 레스토랑에서 열렸다. 좌담회에는 15명의 필진 가운데 김기수 동아대 건축학부 교수,안웅희 한국해양대 건축학부 교수,김명건 다움건축 대표,김승남 일신설계종합건축사사무소 이사 등 4명이 참여했다.

-시리즈를 마치는 소감은.

△김승남 이사=예전에는 부산의 건축과 도시에 대한 큰 이슈만 많았지 깊이 있는 이야기는 적었다. 학계,건축업계의 전문가들이 직접 현장을 답사해 몰랐던 공간을 발견하고 도시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감회가 새롭다.

△김명건 대표=부산의 인구가 6년째 감소하고 있다. 이제 부산 건축도 양적인 가치에서 질적인 가치로 변화하고 부산만의 정체성을 지녀야 할 때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의 형태,역사를 제대로 알고 도시가 지닌 문제점들을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김기수 교수=부산의 도시공간을 직접 몸으로 체험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좋았다. 그동안 부산의 공간,도시란 부분이 학문적,논리적으로 많이 얘기됐지만 우리가 느끼기에 거리감이 많았다. 전문 건축가들과 함께 다니며 다양한 관점에서 느낀 점들을 공유할 수 있어서 만족한다. 이런 일상적 체험들이 앞으로 부산의 도시와 건축 만드는 데 중요한 담론이 될 수 있다.

△안웅희 교수=글을 쓰면서 자유로운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2003년 초 발령을 받고 부산에 와서 용두산 공원에 올라갔더니 그리스 아테네시의 아크로폴리스와 많이 닮았다는 것을 느꼈다. 도심 한복판에 섬처럼 우뚝 솟아난 형상은 위성사진으로 보면 너무나 흡사하다. 항구를 낀 부산은 뉴욕,고베,오사카보다 더 강력한 매력이 있는데 이를 현실화시키려면 도시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번 시리즈의 의미를 되짚는다면.

△김승남=지하철역을 매개로 기존의 공간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봤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 부산시청 주변 관공서 건물들을 사람의 표정으로 읽는다든지,해운대와 화명동 제척지의 숨겨진 가치를 새로 발견한 것도 성과다. 건축 전문가들이 도시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해 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명건=그동안 부산이란 도시에 대한 담론과 고민이 적었는데 이번 답사로 그 출발점을 마련했다. 도시 곳곳을 다니면서 도시에서 지킬 것과 버릴 것,바꿀 것에 대한 섬세한 리서치가 필요함을 느꼈다. 지하철 1호선은 오래된 지역,2호선은 새로 생겨난 신도시를 통과하기 때문에 시간대별로 도시가 변해가는 과정을 중간에 점검할 수 있었다.

△김기수=현재 부산의 도시와 건축에 대해 많은 관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소통하는 기회가 드물었는데 이번 답사를 통해 전문가 간 담론의 장을 만들 수 있었다. 새로운 관점에서 도시를 바라보며 전문가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화두를 던질 수 있었다.

△안웅희=김 교수의 말에 동의한다. 그동안 전문가들이 건축에 대해 발언하는 기회가 드물어 답답했다. 'U 프로젝트' 모임 후 건축과 도시에 대한 논쟁을 많이 할 수 있었고 신문을 통해 일반 시민과 소통하는 통로를 마련해 만족한다.

-부산의 도시,건축 문화,정책상의 문제점은.

△김승남=해운대 센텀시티에 가보면 도로에 이름이 없다. 외국은 스트리트(거리) 중심으로 공간을 인식하지만 우리는 큰 빌딩이나 번지 수로 인식한다. 우리는 건축을 먼저 만들고 나머지에 도시의 공공적인 요소를 결정한다. 순서가 뒤바뀌었다. 좋은 도시를 만들 수 있는 전체적인 마스터 플랜을 만들어야 좋은 건축이 탄생할 수 있다. 도시건축의 물리적 공간에 영향을 미치는 잣대를 제도와 문화라고 본다면 그동안 부산은 지나치게 경직되고 투박한 제도라는 잣대에 의해 단기간에 급격한 변화를 보여왔다. 자생적이고 장기적인 문화가 도시와 건축에 스며들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김명건=도시가 변화할 때 많은 가치가 충돌한다. 시민,사업자,정책입안자들이 보는 가치와 관점은 다를 수 있다. 이들 간에 때론 대립되는 관점의 차이를 조율하고 타협할 수 있는 건강한 긴장 관계가 부산에는 없다. 1985년 미국의 부동산 개발업자 도널드 트럼프가 뉴욕 허드슨강 위쪽에 152층의 주상복합건물을 포함한 6만3천여평의 '텔레비전 시티 계획안'을 내자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층수를 60~70층으로 낮춰 구상안을 내놓아도 마찬가지였다. 개발계획안이 수년째 표류하자 오히려 시민단체에서 나서 트럼프와 협상을 벌여 절반의 면적을 공원용지로 얻어냈다. 이렇게 탄생한 '리버사이드 사우스 파크'는 시민단체,트럼프,뉴욕시의 공동작품이다. 부산에서도 센텀시티에 100층 건물이 들어설 예정인데 왜 지어야 하는지에 대한 공감대를 마련해야 한다.

△김기수=부산의 경우,기장을 관광타운으로 한다든지,센텀을 첨단도시로 이미지화시키는 등 슬로건만 만들면 모든 것이 다 된 것처럼 본다. 그 안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라는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없다. 건축계 내부에서도 주요한 담론을 만들지 못하는 것도 아쉽다. 예를 들어 AID 아파트 재건축 논란이 있었을 때도 시간을 가지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보다 현상공모라는 해결책을 곧바로 마련했다. 물론 현상공모란 방식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논란 사안이 생겼을 때 전문가 집단 내부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고 시간과 효율성의 논리만 쫓는 것이 아쉽다.

△안웅희=부산은 해양도시지만 내륙도시 성격도 지니고 있는데 바다 일변도로만 해결하려는 것은 문제다. 내륙의 교통,숙박 등 인프라를 잘 갖춰야 해양도시란 테마가 잘 살아날 수 있다. 또 너무 속도만을 강조하는 풍토도 아쉽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경우,가로등 하나를 설치하는 데 4년이나 걸렸다. 다양한 가로등을 시범 설치해 주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기 때문이다. 부산도 도시계획에 대한 정책 입안,실행 등에 시간적 여유를 가져야 한다.

-부산의 도시와 건축의 바람직한 방향은.

△김승남=도시는 공공성을 지니고 있기에 전문가,시민들이 도시의 공통된 가치를 찾는 데 합의와 조율을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독일 베를린도 도시의 변화를 시도할 때 부산처럼 인구가 줄고 시 재정이 줄어들고 있었다. 베를린은 1984년 국제건축박람회를 개최해 세계적인 건축가로부터 개발 방향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 세계적인 건축가들은 도시 곳곳을 다니며 도시 변화에 대한 각종 아이디어를 냈고 베를린은 원래 지녔던 도시공간 가치를 지켜내며 변모했다. 잘 된 건물의 외형만 볼 것이 아니라 큰 관점에서 도시의 성공 요인과 그 과정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김명건=도시의 일상적인 가치를 발굴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부산시 관계자들은 상하이를 방문하면 초고층 빌딩이 즐비한 푸둥지구만 주목한다. 푸둥만 있으면 상하이는 없다. 100여 년 역사를 간직한 옛 건물들이 많은 와이탄과 신톈디가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대비를 보여주기에 푸둥이 더 부각된다. 부산도 대규모 아파트 단지 등 획일적 개발이 아닌 부산에 있는 오래된 가치,장소를 발굴해서 도시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삶을 수용해야 한다.

△김기수=부산은 1990년대 초까지 물류 수출항 등 근대적 잣대에 의해 발전,팽창해왔다. 이제는 물류 수출항이라는 전근대적 시스템만 고수한다면 한국에서 차지하는 부산의 비중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부산은 다시 변화해야 한다. 하지만 도시의 상징성만 부각할 것이 아니라 도시 개발에 대한 확실한 비전과 풍부한 콘텐츠를 확보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상하이 푸둥지구,싱가포르 등 모범적인 도시 건설 사례들의 그 겉모습만 보지 말고 시스템,내용 등 숨은 이면을 찾아야 한다.

△안웅희=부산에는 1950년대 골목부터 첨단 지역까지 다양한 공간이 공존한다. 따라서 개선의 여지가 많다. 부산의 도시 경계를 동서로는 강서와 기장,남북으로는 양산과 바다 쪽으로 확장해야 한다. 그 다음 부산의 중심에 위치하는 하얄리아를 공원으로 만들어 대규모 녹지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단독주택의 개선도 시급하다. 주택이 편안하고 주거로서의 경쟁력을 지녀야 도시에서 건물 높이의 차별화가 가능하다. 경계를 확장하고 주택을 개선한다면 부산도 훌륭한 도시가 된다. 정리=김상훈기자 neato@busanilbo.com 사진=정대현기자 jh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