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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부산일보] 2006.08.28. 부일시론 -한국 사회의 괴물, 쏠림현상

작성일
2006-08-28
작성자
최고관리자

관객 동원 수에서 나날이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영화 '괴물'은 작품성 자체의 평가를 논외로 하더라도 한국 사회 특유의 '쏠림 현상'을 극명하게 드러내며,이슈가 되고 있다. 특정 화제작은 언론과 관객,모두를 집단적으로 과잉 열광시키며,영화판의 모든 부가가치를 싹쓸이해버린다. 관객수 천만의 의미는 이제 영화에서 대박의 신화를 일컫는 보통명사가 된 듯하다. 해외에서 호평을 받는 어느 저예산 감독은 차라리 만명을 수용하는 영화관을 지어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듯 영화를 본다면 얼마나 감동적이겠냐며 통렬한 독설을 퍼붓기도 한다.

 

빼꼭히 괴물로 채워진 멀티플렉스에서 같은 영화를 본 후 묘하게도 머릿속에 오래 전 보았던 프랑스 영화 '타인의 취향'이 오버랩되었다. 6인6색의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진 주인공들의 관계를 그린 영화인데,결국 삶은 자신과 다른 타인의 취향을 인정하며 살아간다는 이야기이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차이,그 다양함이 바로 문화의 원동력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선택을 강요하게끔 하는 쏠림 현상은 모 아니면 도,즉,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독과점의 폐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대변되는 극장 중 600개가 넘는 스크린을 한 영화가 독식하고,10개가 넘는 상영관을 가진 극장에서도 한 영화가 상영관의 반을 넘게 차지하는 경우도 많다. 이틈에 아예 극장을 못 잡아 세상의 빛도 못 보는 영화도 생기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개인의 취향에 따른 문화 향유는 그림의 떡인 것이다. 어쩌면 영화 자체의 가치 때문에 영화를 선택하기보다는 시류에 뒤처지지 않고 세간의 이야기에 끼기 위해서 영화를 봐야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쏠림현상은 영화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현상이다. 월드컵이라도 열리면 온 나라가 마비된다. 바다 이야기의 대박소식의 너도나도 도박장으로 몰려들어 온 나라가 상처투성이가 된다. 특히 삶의 기본요소인 의식주마저도 쏠림 현상의 예외가 아니며, 또 그 현상이 더 공고히 되고 있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최근 통계청은 아파트가 전체 주택 가운데 52.7%를 차지한다고 발표했다. 최근 5년간 지어진 주택 중엔 아파트가 85%를 넘고,동 단위 이상의 도시지역에 지어진 것이 90%정도이다. 이런 통계는 갈수록 주거 패턴이 아파트에 종속되고,아파트 문화가 사회를 더욱 지배할 것임을 보여준다.

 

아파트문화는 평형별,지역별로 계층간 질서를 더욱 뚜렷이 하며,쏠림 현상을 가속화시켰다. 고밀도 밀집 주거 방식은 타인에게서 모방과 관찰을 쉽게 하고,그 속에 자신의 삶을 종속시켜 획일적 문화를 부추긴다. 교육,교통,복지,문화 등 대개 도시의 인프라가 아파트에 편중되어,호기 있게 아파트를 벗어나 살려고 마음먹더라도 나홀로만의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할 정도 버거운 일이다. 결국 아파트가 바람직한 주거 유형이라고 믿는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 거의 없음에도 우리에게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는 셈이다.

 

먹을거리,입을거리 역시 쏠림의 현상에서 비켜가지 않는다. 대형할인마트에서 산 옷가지며,반찬가지가 우리를 지배한다. 단지 생산자와 소비자의 매개역할을 했던 유통이 이젠 거꾸로 생산과 소비를 지배하기에 이르렀고,가격 경쟁 이외의 가치는 사라져버렸다. 개개인 취향에 따라 다양한 먹을거리,입을거리를 찾을 수 있는 선택의 기회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다들 똑같은 타입의 평면으로 만들어진 집에서 자고,그러곤 똑같이 대형할인마트에 간다. 1층에서 먹을거리,2층에서 입을거리를 사서 의식주를 해결한다. 멀티플렉스극장에선 똑같은 영화가 상영 중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선택의 기회가 없는 삶. 이것이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인 것이다.

 

남이 하는 건 똑같이 해야 직성이 풀리는 독특한 평등주의,줄을 잘 서야 대세에 뒤지지 않는다는 왜곡된 기회주의,소위 뜨는 트렌드를 따라 잡아야 한다는 대중적 집단주의,금방 끓고 금방 식어버리는 냄비주의 등 한국 사회 특유의 병폐들이 이런 쏠림 현상을 더 부채질한다. 우리 사회에 숨어 있는 진짜 괴물은 선택의 기회를 차단하는 이런 병폐들이다.

 

좋은 삶이란 것은 존 스튜어트 밀이 말했듯,"스스로 선택하는 삶이다"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짜여진 틀 속에 똑같은 패턴으로 움직여야 하는 사회의 미래는 없다.  -김명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