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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부산일보] 2006.04.05. 부일시론 -선거와 건축, 그리고 매니페스토

작성일
2006-04-05
작성자
최고관리자

 

'200 대천루 계획'은 대전의 모 후보가 한국을 상징하는 815m 높이의 200층 랜드마크 건물을 대전시내의 도시정비구역에 짓겠다고 내세운 공약

이다. 또,인천의 모 후보는 송도자유무역구역에 바다를 매립하여 150층 높이의 비즈니스타워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마치 높이뛰기 경기처럼 누

가 높이세우냐에 따라 5·31 지방선거의 승부가 날 듯한 분위기이다. 그런데,이런 거대 사업의 실효(失效)성에도 불구하고 대전의 '200 대천루

계획'은 도시의 변화와 상징을 갈구하는 지역시민들의 바람과 맞물려,대전 선거판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초고층건물은 엄청난 높이와 규모를 지탱하는 건축구조방식과 더불어 이를 뒷받침하는 신공법이 병행되어야 가능한 사업이다. 더욱이 엄청난 금

액의 건축비 조달,이에 따른 수익성의 창출,더불어 도시계획적인 측면 등 타당성 조사가 밀도 있게 고려되어야 하며,상상을 초월하는 규모 때문

에 그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이러한 계획은 일개 선거캠프에서 '아니면 말고'식으로 즉흥적으로 그려낼 구상은 아니다.

지방선거를 통해 발표된 개발공약이 대천루를 통해 지역과 한국을 넘어,세계의 랜드마크를 세우겠다고 하니,그 발상의 천진함과 기개에 놀랍기

만 하다. 이름마저도 마천루를 능가하는 대천루이지 않은가.

사실,건축과 주택공급을 통한 개발 공약은 유권자에게 선보일 수 있는 전시성 효과가 화끈하기에 어떤 분야보다도 입후보자들에겐 뿌리칠 수 없

는 매력적인 분야이다. 그렇기에 정치와 이념공방에서 자유로운 지방선거에선 입후보자들이 건축과 주택 분야를 더더욱 근사한 청사진으로 치장

하려 한다.

대천루 건립를 둘러싼 시비는 부산의 선거쟁점은 아니지만,지방선거에서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한 헛공약에 대한 경종을 울려주기에 '의미가 있

는 논쟁'이다. 북항재개발,하얄리아 시민공원,동부산 개발,서부산 개발,혹은 각 지역별로 이루어지는 재개발,재건축 계획 등 현재 부산에서 진

행 중인 개발계획들이 곳곳에 있다. 이와 맞물려 면밀한 타당성 조사와 지역 주민의 합의 과정은 생략된 채 장밋빛 애드벌룬 띄우기 식으로 돌

출 거품 공약들이 남발될까 우려스러워 대전의 대천루 논란이 남의 일 같지 않다.

다른 공약들에 비해 특히 건축과 주택 관련 분야는 시간과 예산이 많이 투입되며,한번 정책적으로 결정되면 물리적으로 수정하기가 힘든 분야이

다. 특히 건축물의 건립은 그 용도가 무엇이든 도시의 공공성을 담보하며 도시 전체의 맥락에 맞추어 건립되어야 한다. 더욱이 건립뿐만 아니라

,운영은 특히 중요하다.

선거 공약 사업에 따른 건축물들이 완공 후에 적절한 쓰임새를 찾지 못하고,예산과 건립에 따른 노력이 헛되게 되는 사례도 많다. 주택 정책의

경우,지역 경제과 삶의 질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기반 정책이기에 실패한 주택 정책은 지역 주민의 삶의 기반 자체를 뒤흔들 수 있다.

예를 들어,부산시에서 지정해 놓은 478개의 재개발,재건축 사업 예정지 중에서 많은 구역들이 사업성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조합원들의 희망과

는 달리 선뜻 민간주택사업자가 나서지 않는 곳도 많다. 더욱이 개발 이익 환수,과잉 공급물량 조정 등 중앙정부의 부동산정책 등과 맞물려 난

항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많은 선거입후보자들은 재개발,재건축 사업과 관련하여 장밋빛 청사진만 들고 나오는 것이 현재 실정이다. 중앙정부의 정책 기조,도시

전체의 개발 밸런스,수요와 공급에 따른 시장의 흐름 등 주택 정책의 기본 요건조차도 무시한 공약들은 괜히 유권자들로 하여금 헛된 꿈만 부풀

려 놓아 뒷수습마저 어려울 지경으로 몰 수 있다.

물론 침체된 지역의 현안들이 새롭게 부각되어,개선의 계기가 만들어 지며,민간의 신선한 아이디어가 행정,혹은 정책집단에 유입될 수 있는 좋

은 계기가 선거이다. 그러나 선거는 누가 높게,누가 많이 만들고 짓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당선을 위한 물량위주,전시위주의 개발 공약

들은 향후 도시에 불균형 개발과 자치단체의 재정 건전성을 결정적으로 악화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된다.

건축과 주택 등의 선거공약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특히 '목표와 재원,공정,기간' 등 매니페스토(정책공약)의 기본 요건이 충실히 갖춰져야 할

사업들이다. 입후보자는 물론,유권자들 역시 내 집 살림 계획을 세운다는 마음으로 개발 공약에 대한 섬세한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명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