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산일보] 2006.06.21. 부일시론 -월드컵 축구와 민족, 국가
- 작성일
- 2006-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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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관리자
축구는 인간의 욕구와 본능이 분출되는 극적인 공간이다. 공간을 만들어 내는 창의적인 게임이고,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자유로운 상상력이다. 그렇기에 극본 없는 드라마가 연출되고,그 속에서 사람들은 울고 웃는다. 월드컵 32개국의 축구 속에는 저마다 정치,경제,문화의 속성이 숨어 있어 다양한 해프닝도 벌어진다.
1950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패한 브라질에선 조기가 걸리고 자살자가 속출했다. 브라질이 우승한 후엔 국기에 새겨진 지구모양 대신 축구공을 새기자는 안이 국회에서 상정된 일도 있단다. 간발의 차로 부결되긴 했지만. 74년 월드컵. 유고와의 게임을 앞둔 자이레팀에 감독해임 통보라는 전보가 날아든다. 군부독재자 모부투가 자국 감독이 유고 출신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후임 감독은 군출신의 체육부장관. 이후 자이레는 유고에 9-0으로 패하고,또 한 장의 전보가 날아든다. 후임감독도 해임.
먼 후진국의 이야기 같지만 우리 축구 역사에도 웃지 못할 씁쓸한 과거가 있다. 66년 월드컵에서 북한이 8강이 오르자,뜬금없이 한국 대표팀은 선수 전원이 중앙정보부 소속으로 팀이 재구성된다. 북한이 하면 우리도 한다는 권력의 뜻에 따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축구를 국가와 국가의 전쟁,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죽고 사는 일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치솟는 분노를 참을 수 없다. 왜냐하면 축구는 그런 문제들보다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축구전문가 빌 샨클리가 1981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처럼,축구는 단순한 스포츠의 개념에서 벗어나 있다. 축구는 권력을 위한 전쟁이다. 권력의 중심에 서기 위한 처절함이 지름 22cm의 축구공에 배어 있다. 부와 명예를 위해 선수,국민,민족,국가,그리고 기업들이 뛰고 또 뛰는 것이다. 지난 19일 불굴의 투혼으로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넣은 극적인 동점골. 그 한 골에 온 국민이 열광한 것도 축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어쩌면 우리들이 본 것은 축구라는 스포츠가 아니라,축구라는 전쟁이기에 그토록 열광했는지 모른다. 같은 전쟁이라도 프랑스와 대한민국에는 조금의 차이가 있다. 프랑스는 국가라는 이름으로,우리는 국가와 더불어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맞붙은 것이다. 우리와 맞선 프랑스 선수들을 보자. 매게임마다 순수한 프랑스계 백인선수는 불과 2,3명 남짓하다. 귀화,이민자 등으로 이루어진 다국적군,아니 다민족군인 것이다.
숫자의 차이는 있다하더라도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어떤 나라보다 순혈주의의 전통이 뿌리 깊은 독일 역시 대표적인 주전선수들이 폴란드계이다. 스페인,혹은 아르헨티나의 경우는 매번 선수의 소속국가의 취사선택이 화제이고,아프리카도 그렇다. 일본 역시 귀화한 브라질계 선수가 있지 않은가. 아마도 순수한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팀은 출전국 중 우리나라가 유일한 것 같다.
지금도 우리는 단일민족국가라는 사실이 국민들에게 무한한 자긍심을 준다. 그러나 월드컵에서 보듯 현대 사회에서 민족은 곧 국가라는 개념은 이미 무너졌다. 국가는 최소한의 자격요건을 갖춘 주민등록거주지 정도의 개념으로 바뀌고,대신 과거 민족 이상의 동질성을 구성하는 의무와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이렇듯 세계는 자유롭게 국가라는 경계를 넘나드는 탈민족의 흐름을 지니지만,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단일민족이 최고라는 딱딱한 개념 속에 갇혀 있는 상황이다. 한 핏줄만이 하나이며,최고라는 자긍심은 동질성에 대한 강박으로 연결되어 간혹은 타인종에 대한 맹목적인 편견과 차별,고립된 정체성으로까지 이어진다.
수많은 이민자들로 구성된 미국의 아킬레스건은 인종문제였으나,가장 짧은 역사 속에 강력한 힘을 구축하게 된 것은 다민족으로부터 수혈된 다양한 문화,즉 아이디어,에너지가 결합된 결과이다. 인종갈등이라는 기회비용 만큼이나 다양성이 사회 속에 자리 잡은 것이다. 세계적인 도시들은 대개가 인종의 용광로,모자이크 등으로 표현될 정도로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현대 사회의 발전 동력은 어쩌면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수용하는 포용성에서 나온다. 한국 사회의 단점 중 하나는 낯선 것들을 배타적으로 본다는 점이다.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가서 공존하려 하기보다는 배척하기 일쑤이다. 우리 바깥의 세계,혹은 낯선 것,특히 그 속에 비주류적인 속성이라도 있다면 우리 사회 안에 융화되는 기회비용은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크다. 늦은 감도 있지만 이제 대한민국이라는 개념은 민족이라는 단일적 집단적 폐쇄성에서 벗어나 확장적인 열린 공동체로 바뀔 때이다. -김명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