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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부산일보] 2006.05.01. 부일시론 -영화도시, 그 이면의 생각들

작성일
2006-05-01
작성자
최고관리자

영화 속에서 도시와 건축은 가장 중요한 배경이자 테마이다. 영화는 도시 예술이라는 빔 벤더스의 말처럼,인간이 만든 가장 복합적인 문화가 바로 도시이며,영화는 그 도시 속의 이야기를 카메라 속에 옮겨 내는 작업이다. 그러기에 도시의 이미지를 포착해 내는 데,영화만큼 적절한 수단은 없다.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은 홍콩의 다양한 속살을 드러낸다. 침사츄이 지역의 청킹맨션은 은밀함과 피폐함을,랑카위퐁 지역의 샌드위치가게는 캐주얼한 가벼움을,영화 속 양조위의 아파트는 세련된 삶의 패턴을 보여주며 도시 공간의 풍부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영화가 만들어진 곳은 뉴욕 맨해튼이다. 맨인블랙,킹콩,뉴욕의 가을,택시드라이버,그리고,섹스 앤 시티….화려한 마천루와 어두운 뒷골목,그리고 뉴욕의 모든 일상적 공간들이 영화적 상상 속에서 새롭게 조명된다. 첨단과 과거,아름다움과 추함, 합리와 모순,사랑과 욕망 등 도시 속의 모든 삶들이 영화 속에 녹아들어,뉴욕을 느끼게 한다. 이처럼 뉴욕과 홍콩을 가보지 않은 사람도 그 속에서 만들어진 영화의 장면만으로 이미 그 도시를 생생히 기억한다. 어쩌면 현대에서 도시 여행은 영화 속 기억 찾기의 한 방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난주 '사생결단'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촬영지가 부산이라는 점을 떠나,부산의 어두운 세계 자체가 테마로서 다큐멘터리를 연상케 할 만큼 마약과 범죄,섹스로 범벅이 된 부산의 뒷골목을 생생히 훑어간다. 장면과 장면을 연결시켜가는 연출의 호흡,무엇보다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력이 인상적인 액션누아르작품이다. 그야말로 빈틈없이,부산이 만들어 내는 거친 공간 속에 인물들은 채워져 있고,이를 담아낸 화면은 막 건져 올린 물고기처럼 살아있다. 장면 하나하나는 부산영상위원회는 물론,시와 시민들의 지원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부산이라는 무대배경과 소재가 없다면 만들어지기 힘든 '부산'스러운 영화이다.

수많은 부산의 야외로케이션장소와 영화촬영소에서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고,그 영화 수도 이제 거의 130편에 이르고 있다. 개봉되는 영화의 장면 속에서 부산의 공간들을 만나는 것은 이제 특이한 일이 아니다. 그저 그렇게 보아왔던 남루한 공간도 영화를 통해 충분히 아름다워질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아름다운 부산의 영화적 공간 이면에는 영화도시의 한계도 잠재해 있다.

부산 자체를 주요한 모티브로 하는 영화의 경우,'친구''사생결단'처럼 장르 자체가 대부분 남성적인 액션물이며,조폭,범죄 등의 거친 도시이미지를 반영하고 있다. 단지 부산의 단편적인 공간 이미지만을 차용하는 영화들도 '인정사정볼것없다(1999)''하류인생(2003)''오아시스(2002)''올드보이(2003)' 등에서 보듯 대개가 비주류적인 부산의 공간들을 담아낸다. 70,80년대의 도시를 재현하려면,부산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한 영화감독의 이야기처럼 과거적 공간 분위기가 지배적으로 영상에 담기는 것이 현실이다. '친구'처럼,70,80년대 초의 모습을 2001년에 영상에 담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듯이.

피폐한 선착장,을씨년스러운 창고,쓰러져가는 쪽방,어두운 뒷골목,낡은 경찰서,산복도로 등을 잇는 계단 등이 바다와 어우러지면 독특한 부산스러운 풍경들이 되고, 이들이 영화와 만나 부산의 대표이미지로 자리 잡는 것도 사실이다. 거친 사투리, 낡았지만 역동적인 공간,바다의 개방성 등이 부산성이라는 시각도 있지만,인구 360여만명의 대표도시이미지로선 부분적이고 또 부족하다.

특히,이런 공간들은 대개가 부산의 도시 문제 중 가장 시급한 현안인 남포동,자갈치,광복동,중앙동 등 침체된 구도심에 집중되어 있고,이 공간들이 부산에서 가장 매력적인 야외로케이션장소이니,현실과 영화의 역설적인 아이러니이지 않는가.

낡은 공간을 미학적으로 재해석하는 영화인들의 솜씨에 세련되고 감각적인 도시적 공간이 제공된다면, 부산이 펼쳐낼 수 있는 영화이야기는 더욱 무궁무진하지 않을까. 부산의 영화들은 일상적 리얼리티와 영화적 리얼리티와의 간격을 상기시켜주며,부산의 도시 개발에 또 다른 과제를 던지고 있다.  -김명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