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산일보] 2007.12.20. 건축, 도시를 만든다 -시리즈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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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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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문화다'를 표방한 '건축, 도시를 만든다' 시리즈의 결산 좌담회가 최근 부산일보사 10층 고메 레스토랑에서 열렸다. 좌담회에는 김명건 다움건축 대표, 김승남 일신설계종합건축사사무소 이사, 안용대 가가건축사사무소 대표 등 3명이 참여했다.
-이번 시리즈에서 '건축은 문화다'라는 새로운 어젠다를 제시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으며, 국내외 사례 가운데 이 어젠다와 가장 잘 부합된 사례는?
△김승남=그동안 건축은 재산증식을 위한 부동산적 가치, 권위의 상징, 돈과 권력의 등가물 등으로 인식돼 왔다. 이번 시리즈는 일상 공간에 자리잡고 있는 건축의 잃어버린 문화적 가치를 새롭게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시리즈에서 리움, 파주 헤이리 예술촌, 두바이 건물 등 명품 건축들이 많이 소개됐는데 이런 사례들은 사회와 도시를 창조하는 건축의 중요한 경향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명품 건축들을 무조건 따라갈 필요는 없다. 좋은 건축은 구체적인 시·공간에서 훌륭하게 실현될 때 그 의미를 재발견할 수 있다.
△김명건=건축이 문화인 것은 자명하다. 그동안 우리는 건축의 문화적 가치보다 부동산, 주택 등 경제적 가치를 우선시했다. 사실 건축은 누구나 접하는 보편적인 문화다. 시리즈에서 잘 된 사례를 소개하다보니 W호텔, 리움 등 비일상적인 공간이 많았다. 일상적 공간들이 더 많이 소개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안용대=건축 작업은 전문적이지만 그 성과로 나타나는 건축은 일상적 공간으로 전이된다. 카페와 농구장을 절묘하게 결합한 네덜란드 우트레히트(Utrecht)대학의 '배스킷 바'는 건축이 일상 공간에서 문화 공간으로 전이된 좋은 사례다. 건축가, 행정가는 이처럼 건축적 공간과 일상의 흐름을 만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부산의 개별 건물, 길 등 미시적인 공간에서 건축을 문화로 생각하는 진화 조짐이 엿보였다. 이런 변화의 의미와 한계는?
△김명건=건축이 문화로 자리매김하는 키포인트는 배려와 멋이다. 지금까지 건축 행위를 할 때 기능적인 충족에 머무르는 경향이 많았지만 이제는 이용자, 주변 환경 등 타자를 배려하는 조짐이 일고 있다. 지역에서 건축주와 설계자의 마인드도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건축을 격조있고 멋스럽게 만드는 시도들은 아직도 개개인의 개별적인 노력에 머무르고 있다. 특정한 길과 건물 등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도시의 특성을 규정짓는 아파트와 거대 구조물에서는 배려와 멋을 찾기가 힘들다. 이를 극복해야만 부산 건축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것이다.
△김승남=해운대 달맞이언덕의 화랑들은 상업 기능과 예술 공간을 잘 결합했고, 미래로 병원, 구포도서관은 단순한 기능적 공간에서 벗어나 이용자를 위한 여유 공간을 창출했다. 개인적으로 광복로의 전반적인 디자인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지난 3년간 건축가와 시민 등이 함께 작업을 진행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안창마을 공공미술 프로젝트, 구포도서관 등 사례들은 미술가, 도서관 관장 등 소수의 자발적인 의지와 희생으로 이뤄진 것이지 이런 사례가 제도적이고 일상적인 기반 아래 진행된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한계가 있지만, 이런 사례들이 일상적으로 반드시 확대돼야 한다.
△안용대=건물을 짓고 길을 만들고 하는 도시 설계와 건축 행위가 유기적인 결합없이 따로 이뤄지고 있다. 땅을 만들고 개별 필지로 나눈 뒤 그 속에 건축을 하라는 식이다. 이 과정을 함께 엮어야 하는데 개별적인 시도들로는 한계가 있다.
-부산이 지향해야 할 공간적 가치는 무엇인가?
△김승남=부산 건축계, 행정계 등은 성장보다는 느림의 미학, 지속가능한 개발로 사고 전환을 해야 한다. 아직도 부산에서는 북항재개발, 동부산권 개발 등 가시적인 대형 프로젝트들이 많다. 인구가 정체되고 주택보급률이 107%에 달하는 부산의 현실에서 도시 공간의 양적 팽창보다는 부가가치를 높이는 질적 성장 방식을 채택할 시점이 됐다. 무한 성장 논리에 희생된 공간의 일상적 가치와 삶의 본질적 가치를 되돌아봐야 할 때다.
△안용대=흔히 세계적인 건축가를 동원해 크고 빼어난 랜드마크적인 건축을 만드는 것을 부산 건축의 최상의 가치로 생각한다. 이런 경향 속에는 자본 마케팅의 전략이 숨어 있다. 시민의 일상적 입장을 고려해 작고 편안한 건축들이 지역에 많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김명건=부산은 사실 도시 성격에 맞지 않는 곳이라 생각이 들 정도로 바다, 강, 산 등 다양한 자연 환경을 지니고 있다. 개항, 근대화를 거쳐 지난 120년간 부산의 도시 공간은 급격하게 팽창했다. 자연 환경과 도시 개발이 충돌되면서 아파트가 산지, 해안가에 우후죽순 들어서는 결과를 초래했다. 우리 모두 개발 틈바구니에서 쉴 새없이 달려왔는데 이제는 긴 호흡을 갖고 숨고르기를 할 필요가 있다. 기나긴 관점에서 개발의 범위, 목표, 전략을 내다보면서 바꿔야 할 부분, 보존 부분을 가려내야 한다.
-부산의 도시공간은 무차별적인 재개발, 재건축으로 구릉지, 수변 등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도시경관 구조가 왜곡되고 있다. 이러한 원인은?
△김승남=부산 도시 공간에 대한 확고한 마스터플랜을 먼저 수립해야 한다. 그 계획에 따라 아파트가 들어서고 안 들어설 자리를 파악할 수 있다. 지금 부산에서는 487곳이 재개발, 재건축, 주거환경개선 사업 등 정비예정구역으로 확정돼 있다. 무차별적으로 도시 정비가 진행되는 이런 현실에서는 진정한 도시 공간의 가치를 찾기가 힘들다. 민간기업, 건축주 등 개발 주체들은 어차피 이익을 위해 도시 정비사업에 참여한다. 문제는 허가 기관이 이를 검증하고 여과하는 시스템과 마인드를 갖추지 않는 데 있다.
△안용대=그동안 도시 디자인 정책은 일관성이 없고 비합리적이었다. 어느 순간 새로 아파트를 지을 때 타워형으로 해라 하는 등 다양성을 배제하고 규제 일변도로 나가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모든 건축에 획일적 잣대를 들이댈 것이 아니라, 지형과 환경에 맞는 탄력성 있는 도시 디자인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그동안 부산에서는 입체적인 도시 디자인 계획이 부재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부산의 도시 건축 정책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안용대=도시를 다자인할 때 인문사회적 가치와 철학에 기반을 둬야 한다. 단순하게 존 나누기, 땅 나누기, 땅 팔기 등을 하면서 건축 자본의 극대화만 끌어낼 것이 아니다. 도시 공간의 철학과 의미를 먼저 정립하고 이를 토대로 공간을 새롭게 만들어가야 한다. 이를 만들어가는 것은 건축가와 도시설계자의 몫이고 이 과정에서 시민과의 협의 과정이 필요하다.
△김승남=북항, 뉴타운 등을 보면 도시계획 부분이 용역의 85%, 건축이 15% 가량 차지한다. 이런 상황에서 건축가의 역할은 개별 필지에 대한 설계에 그치고 만다. 도시설계자, 건축가 등이 서로 인식을 공유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과정이 없이 각자의 영역에서 행위를 할 뿐이다. 이 두 영역의 전문가들이 의견을 도출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공공공간 창출에 대한 인식을 함께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 현재는 시민, 전문가, 정책가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통로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김명건=공간에 대해 시민, 정책가, 전문가들이 첨예하고 논쟁하는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서울에서는 청계천을 만들 때 찬반 격론이 벌어지면서 다양한 시각들이 쏟아졌다. 상반된 견해에 대해 서로 치열하게 토론하면서 새로운 합의점을 도출했다. 우리는 어떤가! 북항재개발만 하더라도 그 방향에 대한 담론 형성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도시 주체들의 다양한 견해를 담아낼 수 있어야 입체적인 정책이 나온다.
-도시 공간 정책을 수행하는 건축계의 마인드는 어떻게 변화돼야 하나?
△김승남=건축계 내부에서도 활발할 토론을 통해 담론을 만들어야 한다. 최근 지역에 포럼이 많아져 바람직하다. 아직 초기 단계인데 좀 더 심도깊은 이야기로 연결돼야 한다. 포럼을 통해 어떤 주장이 나온다면 이를 반박하는 포럼이 열려 토론을 통해 서로 다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건축계에서도 정상적인 싸움이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
△안용대=지금 현실은 부산시 공무원들이 정책을 다 세우고, 건축가 등 전문집단이 이를 확인해주는 수준이다. 지자체는 건축계에 도시 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고, 정보를 공유하게 할 필요가 있다.
△김명건=미국 맨해튼 월드트레이드센터가 무너진 자리에 새로 들어설 건물인 '프리덤타워(2012년 완공)'의 콘셉트에 대해 시민, 지자체 사이에 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뉴욕의 상징이 될 프리덤타워의 높이, 형태, 규모, 공공스페이스 활용방안 등 도시 공공의 이익과 시적 이익을 놓고 건축계, 시민, 뉴욕시당국 등이 다양한 의견을 냈다. 건축의 독창성은 다소 떨어졌지만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뉴욕시의 공공의 자산을 만들었다. 우리도 이처럼 조율하는 과정을 통해 도시와 건축의 정체성을 만들어가야 한다. 문화의 속성은 서로 섞이는 것이지 않은가!
김상훈기자 neato@busanilbo.com 사진=정대현기자 jh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