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산일보] 2006.11.29. 부일시론 -도시계획 vs 문화계획
- 작성일
- 2006-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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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관리자
아침저녁 부산과 연결되는 고속도로나 국도 등을 지나치는 사람들은 누구나 느끼는 현상이지만,출근길 부산으로 들어오는 차로는 항상 한적한
데 반해,나가는 차로는 어느 곳을 막론하고 꽉 막혀 있기 일쑤이다. 흡사 부산을 떠나기 위한 엑소더스의 전초와 같은 느낌이다. 마침 근간의
보도를 접하면,17년째 단 한번도 부산의 인구는 증가하지 않고,줄기차게 줄어들어 지금의 속도라면 2020년께엔 200만명 정도가 되리라는 예상마
저 나온다. 지난 70분기 동안 단 한 번도 인구가 증가하지 않은 광역시도는 부산이 유일하다는 통계도 있다.
무엇이 이 도시를 황량하게 만들고 떠나게 만드는가. 경제난과 교육난 등의 구조적인 문제 외에도 '다이나믹 부산'이란 구호가 공허할 만큼 개
발위주의 전시성 행정에 비해 부산 특유의 맛깔스러운 매력과 활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늦은 감도 있지만,이제라도 이 도시가 지향해야 할 패러다임을 부산에서 살아야 할 사람이면 누구나 고민하고 공유해야 할 시점이다. 무엇
보다 중요한 점은 인구의 감소가 상징적으로 말해 주듯,부산이 도시의 양적 성장에서 질적 조율로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도
시를 새롭게 만든다는 관점보다 이미 있는 이 도시를 어떻게 재생시키느냐는 방향으로 인식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예를 들어 도시와 문화의 관계를 보자. 여태껏 부산의 도시계획에서 문화시설이라는 것은 장식품처럼 부수적인 요소에 불과했다. 아파트,백화점
,공장 등을 배치하고 남는 땅에 생색용으로 지어졌기에 도시의 문화맥락상 소비자인 시민들에게 외면되었다.
도시를 인문적 관점에서 들여다보면,도시계획과 문화계획이 접목해야 함은 무엇보다 중요한데도 과거의 거시적인 도시개발에서는 문화는 적당히
소외되었다. 파리의 도시재생 사업이었던 그랜드 프로젝트를 보자. 오르세역을 미술관으로,도심슬럼지역을 재개발하여 퐁피두미술관으로,폐기된
도축장을 라빌레트 공원(과학관과 음악관 등)으로 변모시키는 등 주요 거점에 문화적 에너지를 도시 재생의 기반으로 하여 문화와 도시계획이
하나로 접목되어야 함을 잘 보여준다. 얼마 전 문을 연 도쿄의 록폰기힐 개발 사례도 주거지 재개발과 더불어 모리미술관,방송국 등을 결합해
문화가 도시재생의 출발점임을 증명한다.
이처럼 문화예술이 사람에게 정신적으로 '재생'과 '치유'의 의미를 가지듯이,도시에서도 이의 논리는 당연히 적용된다.
지난주 있었던 공공유휴공간을 문화적으로 활용해 보자는 한 세미나는 이 도시가 가야 할 조그만 방향들을 열어주었다. 그날 발표된 대전의 한
사례는 부산이 눈여겨볼 만했다. 130평 정도의 2층짜리 공공건물을 3억원 정도 들여 리모델링하여,훌륭한 창작스튜디오 혹은 미술관으로 거듭나
게 해 대전의 구도심에 조그만 활력을 불어 넣은 사례이다. 부산에도 그와 같은 사례가 있다. 콘크리트 옹벽에 공공미술의 손길로 덧칠하여 도
시의 흉물을 재생시킨 일이다. 수정동에 있는 길이 85m 높이 3~7m의 옹벽 위에 시멘트와 페인트를 칠하는 정도의 적은 돈인 불과 3천만원으로
다양한 환경조형물들과 벽면 조경 등을 해 수정동 거리를 새롭게 한 사례이다.
둘 다 주목해야 할 공통점은 도시가 개발되면 필연적으로 생기는 개발반대편의 소외된 공간들을 문화예술과 접목하여 재생시켰고,또 이미 있는
공간들을 활용했기에 예산도 최소한으로 들었다는 점이다. 지난 부산불꽃축제에 쓰인 예산이 12억5천만원. 이 돈이면 어쩌면 40개소가 넘는 수
정동 옹벽과도 같은 부산의 방치된 공간이 새롭게 변모되었을는지 모른다.
부산의 경우,취약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기에 파리나 도쿄의 사례처럼 도시계획과 문화계획을 접목시키며 과감히 도시를 변모하기는 어려운 형편
이다. 그럴수록 도시의 재생 시스템은 작은 곳에서 찾아야 한다. 일단 부산에서 잠자고 있는 유휴공공시설들을 찾아보자. 그것이 도시구조 재편
에서 소외된 학교든,동사무소든,지하철 옹벽이든 무엇이든 좋다. 혹은 공사도중에 방치된 공사구조물도 좋다. 우리 일상 속에서 근접해 있을수
록 재생의 가치는 더 있다.
이를 위해 행정기관별로 산재된 부산의 유휴공간을 데이터뱅크에 담아 공유해 보자. 그리고 이를 문화예술가들의 손에 맡겨 보자. 잠자고 있는
유휴공간과 예산,예술 인력들을 네트워크화하면 도시 재생의 조그만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황량하기 그지없는 이 도시 부산에서 거리 곳
곳에 잠재된 에너지가 피어나며,조그만 변화들이 일어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김명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