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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부산일보] [우리 곁의 작은 건축] 13. 달맞이 건축 3제

작성일
2015-07-20
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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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지형은 산과 강, 그리고 바다가 아름답고 장엄하면서도 드라마틱하게 펼쳐져 있다. 하지만 시민들이 그것을 채 인식도 하기 전에 '도시의 카우보이들(도시행정가·건설업자)'은 불도저 식 개발로 그것들을 밀어내고 있다. 바다, 햇빛, 바람, 하늘을 오롯이 안고 있는 달맞이 언덕 역시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그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서 집을 짓는다는 것은 건축가에게 설렘이 되기도 하지만 경관과 건축이 잘 어울리지 않아 짐을 떠안게 된다.
 
·THE WALL 
거친 질감의 벽돌과 이어진 대지
작은 공원 같은 편안한 출입구
 
·THE FRAME 
자연의 큰 캔버스 펼쳐 놓은 듯  
반사 유리 통해 풍경 스며들어 

·THE BOX 
경사 지면의 언덕 위에 위치  
표정 없는 사각덩어리 그 속엔…
 

㈜다움건축 김명건 대표는 어떤 부채 의식과 부담감을 안고 '달맞이 건축 3제'를 풀었다. 사무소 이름대로, 건축이 과연 건축다웠느냐는 반성 아래 자연과의 소통성 회복은 물론 '건축'의 복원을 시도했다.

'THE WALL', 'THE FRAME', THE BOX'라는 간단한 뼈대만 세우고, 나머지는 자연이 어떻게 스며드는가를 지켜보았다. 가장 최근 작품인 'THE WALL'은 투박한 화강석, 벽돌, 그리고 콘크리트 벽체의 질감을 통해 자연과 시간을 끌어들였다. 'THE FRAME'은 마치 사진 작품의 액자처럼 달맞이 경관이 건축 안에 들어오게 했다. 'THE BOX'는 경사지면의 언덕 위에 표정 없는 사각덩어리 하나로 표현되었다.

지하 2층, 지상 5층의 근린생활시설인 'THE WALL'(연면적 454평)은 1. 2m에서 5m 정도의 좁고 긴 건물의 형상을 하고 있다. 좁고 기다란 땅이어서 설계에서 가능하면 날카로움을 배제해 자연과 동화되게끔 노력했다. 출입구가 땅의 연장이라는 느낌을 줘 사적인 공간에 진입하는 게 아니라, 작은 공원에 들어서는 듯 편안하다. 건축물 내부 곳곳에 작은 쉼터를 조성해 햇살의 변화를 시시각각 느끼게 했다. 좁은 공간의 내부지만 계단 움직임을 통해 풍부한 공간감을 형성한다. 바깥에는 누구나 쉴 수 있는 작은 쌈지공원도 조성,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경계를 없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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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질감의 벽돌과 화강석이 이어져 편안한 느낌을 주는 출입구.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제공


김 대표는 "형태와 장식적인 요소에 치중했던 저의 처음 건축이 몇 년 흐른 후 유행이 끝난 옷을 입고 있는 사람처럼 어색해진 모습을 발견했다"라며 "2천 년 전 주전자 모습이 현재까지도 같듯이, 'THE WALL' 역시 오랜 시간을 함께할 수 있는 건축물이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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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RAME' 전경. 이인미 사진작가 제공

 

연면적 330평의 근린생활시설인 'THE FRAME'은 사진기 프레임같이 반사 유리를 통해 주변 풍경을 끌어들인다. 김 대표는 계절과 시간이 만드는 독특한 풍경의 변화들이 자연스럽게 반사 유리로 된 외부의 창을 통해 내부로 스며들기를 원했다. 때로는 커다란 캔버스를 펼쳐놓은 듯, 해운대 바다와 구름, 그리고 봄의 벚꽃을 대지 미술 형태로 그려내는 착각마저 준다.

김 대표는 "'건축다운 건축'의 출발은 역사와 미래, 자연과 사회에 대한 진정한 물음에서 시작된다"라며 "건축가는 이들을 관계 맺게 해주는 중매자 역할을 한다"라고 말한다. '달맞이 건축 3제'의 출발도 건축이 주연이 되지 않고 배경으로 물러서며 자연 그 자체에 동화되게 하는 콘셉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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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그대로 끌어들인 내부의 모습. 이인미 사진작가 제공

 

그는 하늘과 땅과 태양, 시간과 공간, 자아와 타자 사이에 존재하는 유기적인 관계망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건축가다. 김 대표는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으면서 타자와의 관계, 그리고 그 사이에서 제 역량을 발휘할 줄 아는 건축가다. 박태성 선임기자 pt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