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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부산일보] 집, 머무르는 곳이 아니라 삶을 즐기고 표현하는 공간

작성일
2012-05-25
작성자
최고관리자

 

집, 머무르는 곳이 아니라 삶을 즐기고 표현하는 공간

'건축학 개론'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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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다움건축 김명건 대표가 10년 전에 장애인 부부를 위해 설계한 경남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의 전원주택에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사랑을 다룬 영화 '건축학개론'이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대박행진 중이다. 얼마 전에는 공공건축의 대가 정기용 건축가의 생애 마지막 여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까지 극장에서 개봉되는 등 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시적인 유행 같은 것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일까.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부동산 투자 외에 (돈이 안 되는) 건축 관련 서적이 증가하는 현상에 주목,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며 집을 투자로 생각하던 사람이 줄고 삶을 즐기는 공간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우리에게 집은 무엇이고, 어떻게 건축을 즐길 수 있을까. '건축학개론' 해설서가 있었으면 좋겠다."좋은 집은 좋은 사람과 같다"지난 토요일 건축가 김명건 다움건축 대표와 만나 부산을 빠져나갔다. 그가 예전에 설계한 경남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의 한 전원주택을 보러가는 길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개막 때 입주했다니 정확하게 10년이 흘렀다. 김 대표는 거기 말고 다른(좀 더 근사한) 집을 보면 안 되겠냐고 했다. 꼭 그 집 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설계했지만 엄연히 남의 집인데, 방문하는 기분이 어떤지 궁금했다. 자신을 몰라보고 "누구세요, 어떻게 오셨어요"라고 물으면 기분이 묘하단다. 시집간 딸네 집에 가는 기분과 비슷하면서 다른 모양이다.자연스럽게 영화 '건축학개론' 이야기가 나왔다. 간략한 줄거리는 이렇다. 15년 만에 승민(엄태웅 분)을 찾아온 첫사랑 서연(한가인 분)은 자신의 제주도 옛집을 새로 지어달라고 한다.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서연이 아버지를 모시고 살기 좋게 집을 리모델링하면서 오해로 어긋났던 사랑의 상처를 치유한다.김 대표는 일반인들이 이 영화에서 미처 알아채지 못한 부분을 말해주었다. "건축학개론의 보이지 않는 주인공은 바로 집이다. 서연의 옛날 집에는 어린 시절 벽에 키를 재던 흔적, 시멘트가 굳기 전에 밟아 남아버린 발자국 등이 그대로 있다. 기억과 역사, 우리 사회에 가장 부족한 부분이다. 승민은 전위적이고 꽤 괜찮은 작품을 제시하지만 서연은 어려워 못 알아 듣겠다고 타박을 한다. 결론은 리모델링,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것이다."어떤 집이 좋은 집일까. 김 대표는 "좋은 집은 좋은 사람과 같다"고 말했다. "예쁘거나 똑똑하다고 좋은 사람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적당하고, 부담 없고, 센스 있고, 남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닐까." 좋은 사람이자 좋은 집에 필요한 조건이 더 남았다. 건강하고, 변하지 않으며, 너무 일찍 가버려도 안 된다.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어져야 좋은 집이란다. 나는 좋은 집 같은 사람일까.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집용당리의 김준동(53)·이미선(53) 씨 부부 집에 도착했다. 30여 평의 크지 않은 집이 울창한 나무에 살짝 숨은 듯하다. 주변으로는 꽃이 만발했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사방으로 난 유리창을 통해 초록의 나무들이 시원하게 보인다. 노출콘크리트 기법으로 만들어진 이 집은 방문객과 부부를 위한 공간으로 잘 구분되어 있었다.그런데 자세히 보니 여닫이식 유리창이 특이하게도 마룻바닥 근처에 설치되어 있다. 일어나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 김 씨를 배려했다. 부인 이 씨가 절뚝거리며 다과를 내온다. 어릴 적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를 절게 되었단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부부에 대한 배려가 곳곳에 숨어있었다. 둘 다 몸이 불편한 부부, 도시에 사는 게 낫지 않을까. 부산 만덕동의 한 아파트에 살 때 김 씨는 몸이 자주 아팠지만 여기 와서 좋아졌다. 자연과 함께 사니 즐겁단다. 오래 공예를 해온 김 씨와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이 씨는 동네 학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친다. 아무래도 도시와는 가르치는 스타일이 좀 다른 모양이다. 가을이 되면 집 앞의 감나무에서 감을 따서 그려보라고 시키는 식이다. 두 사람은 음악으로 봉사활동을 하다 만났다. 이 씨는 플루트, 김 씨는 독학으로 배운 기타, 만돌린, 하모니카를 연주한다. 봄에는 진달래, 가을에는 국화라는 식으로 철따라 꽃을 볼 수 있도록 집 주변을 꾸몄다. 꽃밭에서 부부가 연주회를 하는 모습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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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집주인을 배려해 바닥에 설치한 여닫이식 유리창(왼쪽)과 용당리 전원주택의 초기 개념 스케치.

김 씨 부부는 오랜만에 찾아온 김 대표를 보고 미안해했다. 몸이 불편한 탓에 예쁜 집을 잘 꾸미지 못하고 지저분하게 해놓고 살아서 미안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들 부부는 물론 집까지 다 행복해 보인다. 이 씨는 "도시의 아파트에 살면 집에서 TV밖에 안 보고, 사람들도 자꾸 폐쇄적으로 변한다. 우리 집은 대문이나 담도 없다"고 말했다. 언제든 또 놀러오라며 배웅하는 이들 부부를 뒤로 하고 집을 나왔다. 좀 낡긴 했지만 좋은 집이다. 남들에게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 이들의 사생활은 지켜주기로 약속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몇 동 몇 호'로 인식되는 아파트에 산다. 이 아파트가 영화에서처럼 첫사랑을 매개하고, 추억의 장소로 기억될 수가 있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건축학개론'에 나오는 서연의 제주도 집에서 사는 꿈을 꾸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건축을 보러 다니는 시대"부산 수영구 망미동의 레스토랑 '엘 올리브'에 이어 바로 옆 크리에이티브센터에 최근 '엘 올리브 가든'이 문을 열어 화제가 되고 있다. 음식 외에도 건축적인 아름다움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는 것. 크리에이티브센터와 '엘 올리브'를 설계한 고성호 대표는 "이제 건축을 보러 다니는 시대가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실제로 건축 답사를 다룬 책들이 잘 나가는가 하면 건축 답사 프로그램도 인기를 끌고 있다. 문화공간 '수이제'는 6월 5일까지 '부산은 골목이다 2-현장 인문학'을 진행하며 산복도로, 감천 문화마을, 원도심 속의 근대 부산 등 현장 답사를 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특히나 목마른 부산에 단비처럼 여겨진다. 부산은 너무나도 어떠한 도시를 만들 것인가 하는 논의도 없이 건설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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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이제 회원들이 감천 문화마을을 둘러보고 있다. 수이제 제공.

 영화 '말하는 건축가'에서 정기용 건축가는 "나의 집은 나의 시선이 닿는 데까지"라며 자기 집을 100만 평이라 소개했다. 하지만 생의 마지막 순간 그에게 허락된 공간은 102㎡(31평)짜리 월세 다세대주택이 전부였다. 그의 넓고 따뜻한 시선을 한번 따라가 봐야겠다.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건축, 낯선 이야기로 피어나다부산대 건축학과 이동언 교수는 "외국이나 서울에만 볼만한 건축물이 있는 게 아니라 주변에도 가치 있는 것들이 있다. 우리 것의 소중함을 잊어버리고 사는데 스토리텔링은 주변에서 일어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저서 '건축, 낯선 이야기로 피어나다'에서 부산·경남의 주목받는 건축물을 이야기하고 있다. 주요 건축물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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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센터를 설계한 고성호(오른쪽) 대표가 담소를 나누고 있다.

요산문학관, 유엔묘지 정문, 누리마루, 부산 중구청소년문화의 집, 남구 문현 3동 푸른솔경로당, 부산글로벌빌리지, 해운대 온누리교회, 금정산 범어사 일주문, 대연동 발도르프사과나무학교, 금정세무서, 동서대 종합운동장, 부산극동방송,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자갈치시장 현대화건물, 해양대학교 국제교류협력관, 부산시립미술관, 부산대 인문관, 부산진구 부전동 플래닛빌딩, 크리에이티브센터, 벡스코, 태극도마을, 영주동 글마루 작은도서관, 디오 센텀사옥, 안창마을, 영도등대 해양문화공간, 두레라움, 센텀시티,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주택. 글·사진=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